세기 사림들은 바로 왕도정치의 구현이라는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를 이해하려 하였고, 특히 자신들의 세력기반인 향촌사회의 주민들에게 도덕적 역사의식을 심어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목표 아래 씌여진 사서들은 이른바 사략형 사서가 널리 유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동국사략』
역사인식과 현실개혁의식, 동사강목의 한국사체계 등 동사강목에 대한 기초 연구가 이루어졌고, 1980년대부터는 동사강목에 담긴 세부내용에 대한 고찰(지리고, 고이, 사론 등에 대한 연구)이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안정복과 동사강목에 대한 검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첫째로, 안
1756년(영조 32)~1758년 사이에 초고를 완성하였고, 22년이 지난 1778년(정조 2)에 비로소 완성한 고조선에서 고려 공양왕까지의 통사(通史)이다.
책은 전 20권으로 엮고, 각 권을
상, 하로 분류해 기술하였다.
서술체제는 편년체이나 《자치통감강목》의 체제에 따라 강과 목으로 나누어, 강에서는 기본이
1. 근현대 민족ㆍ민주운동과 호남의 위상
1-1. 일제 강점기 호남에서의 민중운동
정순제,「호남종횡관(湖南縱橫觀)」: “전남은 과거 갑오운동과 현금의 농민운동의 진원지로서 무산의 소작인들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부터 약자의 무기는 오직 단결뿐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면 단위로 노동단체를
억압이 무력해지자 봉건적 지배층은 경제적 수탈에 의하여 양인층과 노비층을 구속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신분제의 동요는 양인층과 노비층의 사회의식에 일정한 변화를 초래했다. 즉, 그들은 이전까지 자명했던 봉건적 신분의 권위나, 그 권위에 바탕한 사회적 억압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었다.
1. 머리말
『동사강목』은 조선후기 역사연구의 귀결점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후대에 끼친 영향까지 고려할 때 더욱 그 그치가 돋보인다.
안정복과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동사강목』은 일찍부터 학계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인식은 대체로 실학의 근대성이라는 개념틀에 의해 포괄되
인식과 문명의식은 일국적 영역을 벗어나 확장될 수 있었으며, 이로부터 국제관계속에서 고려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두고 동인(東人)으로서의 자기의식이 선명하게 되었다고 하며 동인의식(東人意識)이라 한다. 임형택, 「고려 말 문인지식층의 동인 의식과 문명의식」,『
세기에 돌입하면서 과거의 경험주위에서 탈피하여 해부학과 생리학을 기초로 하는 과학적인 치료운동이 발달하였다. 1845년 ·신체의 회복 부분과 자연적인 형태 및 위치의 이상에 대한 해부학적 생리학적 원리에 근거한 적당한 조건 부여 및 강화·라는 부제가 붙은 독일인 J.A.L.Wemer의 저서 ‘의료체조
역사서는 그 책을 수찬한 사람에 따라 관찬사서와 사찬사서로 나누어진다. 관찬사서란 왕명에 의하여 국가적 사업으로 씌어진 것으로, 이는 개인적인 동기에 의하여 개인이 쓴 사찬사서에 비하여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다. 먼저 체재가 전형적인 역사 서술법을 따른다. 따라서 체재적인 면에서의 균형